갈대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by 누런돼지 2010. 8. 29. 17:06
You must remember this
A kiss is still a kiss, a sigh is just a sigh
The fundamental things apply as time goes by
And when two lovers who
They still say, "I love you" On that you can rely
No matter what the future brings as time goes by
Moonlight and love songs never out of date
Hearts full of passion jealousy and hate
Woman needs man and man must have his mate
That no one can deny
It's still the same old story
A fight for love and glory
A case of do or die
The world will always welcome lovers
As time goes by

꼭 기억해 둬요
키스는 키스일 뿐 한숨은 한숨일 뿐
진실한 감정은 세월이 흐르면 날아가 버려
연인들의 사랑한다는 말도 믿을 수가 없어요
어떤 속삭임도 세월이 흐르면 돌아오지 않아

Well, I was wondering
Why I'm lucky. Why I should find you waiting for me to come along.


by 누런돼지 2009. 5. 10. 00:14

My my, Hey hey
Rock and roll is here to stay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My my, Hey hey
이런, 이봐요
로큰롤은 여기를 떠나지 않아요
서서히 소멸해 가는 것보다는 한번에 불타 사라지는 게 낫죠
이런, 이봐요

Out of the blue and into the black
They give you this, but you pay for that
And once you're gone you can never come back
When you're out of the blue and into the black
우울함을 떨치려다 암흑 속으로 들어갔죠
그들이 준 것에 당신은 대가를 치러야 해요
그리고 일단 당신이 떠나고 나면 다시 돌아 올 수 없어요.
우울함을 떨치려다 암흑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말이에요

The king is gone but he's not forgotten
This is the story of a Johnny Rotten
It's better to burn out than it is to rust
The king is gone but he's not forgotten
왕은 떠났지만 그는 잊혀지지 않아요
이건 Johnny Rotten 이야기에요
녹스는 것보다는 불타 없어지는 게 나아요
왕은 사라졌지만 그는 잊혀지지 않아요

Hey hey, my my
Rock and roll can never die
There's more to the picture than meets the eye
Hey hey, my my
이봐요, 이런
로큰롤은 절대 죽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것보다 그 이상의 것이 있어요
이봐요, 이런

by 누런돼지 2008. 7. 15. 01:47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노래를 들으며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마음을 회복하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그저 절룩거려도 끝까지 달려갈테니 기다려줘...
by 누런돼지 2008. 5. 24. 23:48

생명 / 요시노 히로시

생명은
자기 자신만으로는 완결이 안 되는
만들어짐의 과정
꽃도
암꽃술과 수술로 되어 있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고
벌레나 바람이 찾아와
암꽃술과 수술을 연결하는 것
생명은
제 안에 결여를 안고
그것을 타자가 채워주는 것

세계는 아마 다른 존재들과의 연결
그러나 서로가 결핍을 채운다고는 알지도 못하고
그냥 흩어져 있는 것들끼리
무관심하게 있을 수 있는 관계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도 허용되는 사이
그렇듯 세계가
느슨하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왜일까.

꽃이 피어 있다.
바로 가까이까지
곤충의 모습을 한 다른 존재가
빛을 두르고 날아와 있다.

나도 어느 때
누군가를 위한 곤충이었겠지.
당신도 어느 때
나를 위한 바람이었겠지.

by 누런돼지 2008. 4. 19. 23:26

너의 작은 숨소리가 / 함기석
 
흔든다 아주 작은 먼지 하나를
흔든다 먼지가 앉은 나비 날개를
흔든다 나비가 앉은 꽃잎을
흔든다 꽃이 잠자는 화분을
흔든다 화분이 놓인 탁자를
흔든다 탁자가 놓인 바닥을
흔든다 바닥 아래 지하실을
흔든다 지하실 아래 대지를
흔든다 대지를 둘러싼 지구를
흔든다 지구를 둘러싼 허공을
흔든다 허공을 둘러싼 우주 전체를

-시집 <뽈랑 공원>(랜덤하우스)에서
 

by 누런돼지 2008. 4. 15. 22:00
그날
너무 캄캄한 길모퉁이를 돌아서다가
익숙한 장애물을 찾고 있던
나의 감각이, 딱딱한 소스라침 속에서
최초로 만난 事象, 불현듯
존재의 비밀을 알아버린
그날, 나의 플래쉬 속으로 갑자기, 흰

- 기형도, <나의 플래쉬 속으로 들어온 개> 中

*  事象 : 관찰할 수 있는 사물과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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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다가 불현듯 내 생각이 났다.
술을 엄청 퍼 마시고 비틀거리다 우리학교 교양관의 까칠까칠한 벽에 부딪혔다.
벽이 정말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술을 마신 나로서는...
그 때 나는 허연 빛을 보았다. 불이 번쩍 했다.

그래서 나는 기형도 시인이 술을 한 잔 하고 비틀거리다
술집 근처 벽에 머리를 한 번 헤딩하고 나서 시를 쓴 게 아닐까 생각한다
플래쉬, 흰 빛이 번쩍~~
그렇게 부딪히고 나서 상처가 남았다.
그러나 아프지만 뭔가 속 시원한 마음이 있었다. 그때는...

이제는 술을 마셔도
안경을 잃어버리고, 몸이 피곤해 죽을 것 같아도
뭔가 마음이 허전하다.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다.
by 누런돼지 2008. 3. 26. 03:17
석쇠의 비유 / 복효근

꽁치를 굽든 돼지갈비를 굽든 간에
꽁치보다 돼지갈비보다
석쇠가 먼저 달아야 한다
익어야 하는 것은 갈빗살인데 꽁치인데
석쇠는 억울하지도 않게 먼저 달아오른다
너를 사랑하기에 숯불 위에
내가 아프다 너를 죽도록 미워하기에
너를 안고 뒹구는 나는 벌겋게 앓는다
과열된 내 가슴에 너의 살점이 눌어붙어도
끝내 아무와도 아무 것과도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고독하게 알고 있다
노릇노릇 구워져 네가 내 곁을 떠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차갑게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나는
너의 흔적조차 남겨서는 아니 되기에
석쇠는 식어서도 아프다
더구나
꽁치도 아닌 갈빗살도 아닌 그대여
어쩌겠는가 사랑은 떠난 뒤에도
나는 석쇠여서 달아올라서
마음은 석쇠여서 마음만 달아올라서
내 늑골은 이렇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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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쇠는 태어나면서부터 어차피 꽁치든 갈빗살이든 같이 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점점 나는 운명론자가 되어가는 것일까. 명색이 유물론자인데...ㅋ
by 누런돼지 2008. 3. 22. 23:31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 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시를 겁나게 잘 아는 친구 얘기/조영관

어쩌다 곰장어 포실하게 익어 가는 포장마차에서
몇 자 끼적거리다가 들키는 바람에
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 왈
가슴을 때리면 때리는 것이지
때릴까 말까 그렇게 재는 것도 시냐고
저 푸른 풀밭 거시기 하면서 끝나면 되는 것을
뭐 좋은 말 있을까 없을까 겁나게 재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고
친구는 심심한 입으로 깐죽거리며 얘기했는데

유행가 가사처럼 자기 깐에 흥얼흥얼 불러제낄 수 있으면 된느 거지
도대체 분간이 안 가게 써 놓은 것도 시냐고
툭 터진 입으로 잘도 나불대다가는
거울에 달라붙은 묵은 때를
걸레로 박박 문대 닦아내드끼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들 머리에도
훤하게 쏙쏙 들어오게 고렇게만 쓰면 될 것이지
기깔나게 멋만 부려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라고 친구는 겁나게
싸갈탱이 없이 얘기를 했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니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해 놓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천장만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래 짜샤 나도 안다 알어 그 정도가 될라면
얼마나 지지고 볶고 엎어치고 뒤집어치고
대가리를 얼마나 질끈질끈 우려먹어야 되는지 나도 안단 말이다
허지만 요즘 같이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그런 고민을 해쌓다니
정말 신통방통허다면서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다가는
달랜답시고 어깨를 툭툭 치며 술까지 채워줬는데

그래 죽도 밥도 안 되는 시
고것도 사치라고 말하면 할말이 없다마는 하고
서두를 떼어놓고도
시가
유행가 가사처럼 술술 그렇게 흘러나오기가
쉽냐 임마 하고 말하려다가
술잔만 빙빙 돌리며 고개를 팍 수그리고 찌그러져 있었는데
한심하다는 것인지 안타깝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친구는 입맛을 춧춧 다시며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더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흔적을 남기는
우리 인생살이 같이
농담 같으면서도 농담 같지 않고
욕 같으면서도 욕이 되지는 않는
망치로 때리는 것 같지만서도 호미로 가슴을 긁는 시가 될라면
졸나게 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어려운 시가 될라면
얼매나 깊은 터널을 지나야 하는지 니가 어떻게 알겄냐 자식아, 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면서도
웬일로 한숨 같은 기침만 터져 나오는지
연기 자우룩하게 곰장어는 익다 못해 타고 있었는데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박정대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그대가 없어도 혼자 담배 피우는 밤은 오네

보르헤스의 책을 펼쳐놓고
<꿈의 호랑이들>을 읽는 밤은 오네

밤이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도 아닌데
깊은 밤 속에서
촛불로 작은 동굴을 하나 파고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는 밤은 오네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가끔 비가 내리기도 하겠지만
내 고독이 만드는 음악을
저 홀로 알뜰히 듣는 밤은 또 오네

한때 내가 사랑했던 그대,
통속소설처럼 떠나간 그대는
또 다른 사람 품에서
사랑을 구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무리 그대를 생각해도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아 나는 아프네,

때로는 그대와의 한 순간이
내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보여줬으니
미안해하지 말게, 사랑이여,
그런 건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이여
그대에 대한 짧은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이미 불멸을 지녔네


사랑하는 별 하나/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by 누런돼지 2008. 3. 1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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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압정 / 이문재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by 누런돼지 2008. 3. 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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