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쇠의 비유 / 복효근

꽁치를 굽든 돼지갈비를 굽든 간에
꽁치보다 돼지갈비보다
석쇠가 먼저 달아야 한다
익어야 하는 것은 갈빗살인데 꽁치인데
석쇠는 억울하지도 않게 먼저 달아오른다
너를 사랑하기에 숯불 위에
내가 아프다 너를 죽도록 미워하기에
너를 안고 뒹구는 나는 벌겋게 앓는다
과열된 내 가슴에 너의 살점이 눌어붙어도
끝내 아무와도 아무 것과도 하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미 고독하게 알고 있다
노릇노릇 구워져 네가 내 곁을 떠날 때
아무렇지도 않게 차갑게 제 자리로 돌아와야 하는 나는
너의 흔적조차 남겨서는 아니 되기에
석쇠는 식어서도 아프다
더구나
꽁치도 아닌 갈빗살도 아닌 그대여
어쩌겠는가 사랑은 떠난 뒤에도
나는 석쇠여서 달아올라서
마음은 석쇠여서 마음만 달아올라서
내 늑골은 이렇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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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쇠는 태어나면서부터 어차피 꽁치든 갈빗살이든 같이 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점점 나는 운명론자가 되어가는 것일까. 명색이 유물론자인데...ㅋ
by 누런돼지 2008. 3. 22. 23:31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 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시를 겁나게 잘 아는 친구 얘기/조영관

어쩌다 곰장어 포실하게 익어 가는 포장마차에서
몇 자 끼적거리다가 들키는 바람에
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 왈
가슴을 때리면 때리는 것이지
때릴까 말까 그렇게 재는 것도 시냐고
저 푸른 풀밭 거시기 하면서 끝나면 되는 것을
뭐 좋은 말 있을까 없을까 겁나게 재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고
친구는 심심한 입으로 깐죽거리며 얘기했는데

유행가 가사처럼 자기 깐에 흥얼흥얼 불러제낄 수 있으면 된느 거지
도대체 분간이 안 가게 써 놓은 것도 시냐고
툭 터진 입으로 잘도 나불대다가는
거울에 달라붙은 묵은 때를
걸레로 박박 문대 닦아내드끼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들 머리에도
훤하게 쏙쏙 들어오게 고렇게만 쓰면 될 것이지
기깔나게 멋만 부려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라고 친구는 겁나게
싸갈탱이 없이 얘기를 했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니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해 놓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천장만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래 짜샤 나도 안다 알어 그 정도가 될라면
얼마나 지지고 볶고 엎어치고 뒤집어치고
대가리를 얼마나 질끈질끈 우려먹어야 되는지 나도 안단 말이다
허지만 요즘 같이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그런 고민을 해쌓다니
정말 신통방통허다면서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다가는
달랜답시고 어깨를 툭툭 치며 술까지 채워줬는데

그래 죽도 밥도 안 되는 시
고것도 사치라고 말하면 할말이 없다마는 하고
서두를 떼어놓고도
시가
유행가 가사처럼 술술 그렇게 흘러나오기가
쉽냐 임마 하고 말하려다가
술잔만 빙빙 돌리며 고개를 팍 수그리고 찌그러져 있었는데
한심하다는 것인지 안타깝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친구는 입맛을 춧춧 다시며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더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흔적을 남기는
우리 인생살이 같이
농담 같으면서도 농담 같지 않고
욕 같으면서도 욕이 되지는 않는
망치로 때리는 것 같지만서도 호미로 가슴을 긁는 시가 될라면
졸나게 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어려운 시가 될라면
얼매나 깊은 터널을 지나야 하는지 니가 어떻게 알겄냐 자식아, 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면서도
웬일로 한숨 같은 기침만 터져 나오는지
연기 자우룩하게 곰장어는 익다 못해 타고 있었는데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박정대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그대가 없어도 혼자 담배 피우는 밤은 오네

보르헤스의 책을 펼쳐놓고
<꿈의 호랑이들>을 읽는 밤은 오네

밤이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도 아닌데
깊은 밤 속에서
촛불로 작은 동굴을 하나 파고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는 밤은 오네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가끔 비가 내리기도 하겠지만
내 고독이 만드는 음악을
저 홀로 알뜰히 듣는 밤은 또 오네

한때 내가 사랑했던 그대,
통속소설처럼 떠나간 그대는
또 다른 사람 품에서
사랑을 구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무리 그대를 생각해도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아 나는 아프네,

때로는 그대와의 한 순간이
내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보여줬으니
미안해하지 말게, 사랑이여,
그런 건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이여
그대에 대한 짧은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이미 불멸을 지녔네


사랑하는 별 하나/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by 누런돼지 2008. 3. 16.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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