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h21.hani.co.kr/section-021158000/2008/02/021158000200802210698049.html

“부평 역전에서 너와 이별한 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심은, 이제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그동안 세 번 연어가 회귀했고 난 강둑에 앉아 저무는 미루나무를 바라본다 (…) 마음대로 사랑하고 마음대로 떠나버린 부평 역전 오늘도 한 여자를 사랑하고야 만 내게 도화사(道化師)는 달빛의 계곡으로 가라고 일러주었지만 히야신스가 머리를 눕힌 곳은 바람만이 알 뿐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뜻을 종잡을 수 없는 길거리에서 나는 장차 애인이 될 소녀들을 세심하게 고르다 이내, 반성한다 오 반성은 얼마나 매혹적인지 부평 역전에 너를 버려두고 온 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었다”(채은, ‘회문(回文)의 계절’ 부분)

* 도화사(道化師) : 민속극에서, 재주를 부리거나 익살을 떠는 역할을 맡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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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면서 안아 줄 수 없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았다. 사랑한다면 갈증으로 견딜 수 없다면 왜 바짓단이라도 붙잡고 늘어지지 않느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그저 머릿속에서 완성한 명제에 불과했다. 사랑한다고 해도 안아줄 수 없는 마음을 나는 조금, 아주 조금, 막 떠놓은 맑은 물에 앉은 한 조각 먼지 만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평 역전에서 너와 이별한 뒤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로 결심했다'는 문구를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읽고 또 읽었다. 칼럼의 저자가 말하듯, 그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는 것과 같다. 지금 그 시구를 쓴 작가의 마음을 내 멋대로 상상해본다. 그 마음을 나는 조금, 아주 조금, 막 떠놓은 맑은 물에 앉은 한 조각 먼지 만큼 떠올릴 수 있었다.

회문(回文)이라는 것은 앞으로 읽으나 뒤로 읽으나 같은 말을 말한다. 이 글에는 '자꾸만 꿈만 꾸자'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회문을 시에 적용한 것이 이 시이며 회문이야말로 인생의 비의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같다. 사랑과 이별도 같고 욕망과 반성도 같다.'는 말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저 사랑 속에서 이미 이별이 내포되어 있고 이별 속에도 사랑이 내포되어 있으며 욕망 속에 반성이 있고 반성 속에 욕망이 있다는 뜻인가 하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그렇다면 사랑도 이별이 있어야 온전히 이해하고 욕망도 반성이 있어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닌가. 왠지 서글프다.
by 누런돼지 2008. 2. 24. 21:01

우기(雨期) / 문세정

고층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서 꽃무늬차렵이불이 비를 맞고 있다 우산도 없이 프리다 칼로 공원에 앉아 있던 블라우스처럼 고스란히 젖는다 흥건해진다 속으로 구름을 키우며 사는 것들은 원래 빗물에 약한 법

이불 속 드라이플라워되었던 꽃잎들 선명하게 몸 불린다 난간에 매달린 줄기가 불안하지만 보송보송하게 굴어야 할 내일을 위해 지금은 흡수 맘껏 흡수

기공을 활짝 열고 자리 편 이상 이미 난 젖은 솜, 양팔저울에 슬픔의 무게를 달아볼까, 그동안 사랑인 줄 알고 키워 온 구름이 너무 무거워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다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

-시집 <예수를 리메이크하다>(문학세계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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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구름을 키우며 사는 것들은 원래 빗물에 약한 법
그 동안 사랑인 줄 알고 키워 온 구름이 너무 무거워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줄기

표현이 너무 좋다.

비를 맞고 있는 이불 하나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부럽다.

구름인 줄 모르고 구름을 키우고 너무 무거워 빗물을 흘려야만 하는 것이 본래 인생이라니 서글프기도 하지만.

by 누런돼지 2008. 2. 12. 17:20

이젠 떠날 시간이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자꾸 떠나라니까 떠난다

왜 이렇게 쓸쓸하지...
동현이 형이라도 옆에 있으면 좋을텐데..
나 혼자 그 곳에 가서 지내려니 쓸쓸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도 어쨌든 가야지...
못난 놈... 좀 열심히 해야지...
왠지 완전한 패잔병이 되어 후퇴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사람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괜히 더 쓸쓸해진다
전화 한 통 없는 걸 보면 아예 나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있을텐데

괜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외로우니까 사람일까... 외로우니까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는 것일까
그 근원적인 물음이 다시 나를 짓누른다.

왜 나는 잘못하기만 해 놓고
또 후회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모든 것이 괴롭다...
by 누런돼지 2008. 2. 1. 01:20
사랑은 만 번을 해도 미흡한 渴症

물거품이 한없이 일고

그리고 한없이 스러지는 허망이더라도

아름다운 이여,

저 흔들리는 나무의

빛나는 사랑을 빼면

이 세상엔 너무나 할일이 없네.

- 박재삼, <나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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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너무 갈증이 난다...
by 누런돼지 2008. 1. 27. 01:40
No religion / 한대수

no religion can ever heal you
no thoughts nor pain
can ever release you
it's just a photograph
of ancient summer's breeze
life's a mirage
 
no marx no lenin
can ever free you
no stocks nor bonds
can ever secure you
it's just a stream of tears
of young girl's virgin fears
life's a mirage
 
no cause no might
can ever assure you
no tao no how
can ever teach you
it's just a dusty trail
of old man's broken dreams
life's a mirage
life's a mi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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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도 맑스/레닌도 주식도 동양의 도도 서양의 도도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인생은 신기루다. 한대수 아저씨의 말씀. 남재일 선생님이 '낙관적 허무주의'라 표현했던가.

그랜드마트에서 보았던 한대수의 쾌활한 모습이 떠오른다.
양호야~ 양호야~

다신 그랜드마트에서 한대수의 얼굴을 보는 일은 없겠지...
by 누런돼지 2008. 1. 24. 18:11

다시 시작해보자 / 김동률

헤어지자.
요란할 것도 없었지.
짧게 good-bye.
7년의 세월을 털고
언제 만나도 보란듯 씩씩하게 혼자 살면 되잖아.
 
잘됐잖아.
둘이라 할 수 없던 일
맘껏 뭐든 나를 위해 살아보자.
주기만 했던 사랑에 지쳐서 괜히 많은 걸 목말라 했으니.
 
그럼에도 가끔은
널 생각하게 됐어.
좋은 영화를 보고
멋진 노래를 들을 때
보여주고 싶어서 들려주고 싶어
전화기를 들 뻔도 했어.

함께일 땐
당연해서 몰랐던 일 하나둘씩 나를 번거롭게 했지
걸핏하면 툭 무서워 화를 내고
자꾸 웃을 일이 줄어만 갔지...

내 친구들의 위로가
듣기 불편해서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휑한 방안보다 더 내 마음이 더 시려.
좀 울기도 했어.

그럴 때면 여전히
널 생각하게 됐어.
매일 다툰다 해도 매번 속을 썩여도
그런 게 참 그리워.
좋았던 일보다 나를 울고 웃게 했던 날들.

아무래도 나는
너여야 하는 가봐.
같은 반복이어도
나아질 게 없대도
그냥 다시 해보자. 한번 더 그래보자.
지루했던 연습 이제는 그만하자.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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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률의 새 노래가 나왔다. 멜로디 자체는 예전의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지만 반갑다. 내일 앨범이 나온다는데 바로 사러가야겠다. 유일하게 모든 앨범을 가지고 있는 가수니까. 그리고... 왠지 쓸쓸하다.

by 누런돼지 2008. 1. 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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