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누런돼지야 날자꾸나에 해당되는 글 22건
- 2008.03.26 나의 플래쉬 속으로 들어온 개
- 2008.03.22 석쇠의 비유
- 2008.03.16 최근 본 시
- 2008.03.15 민들레 압정
- 2008.02.24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 2008.02.12 우기
- 2008.02.01 쓸쓸함
- 2008.01.27 갈증
- 2008.01.24 No religion
- 2008.01.24 다시 시작해보자
누우떼가 강을 건너는 법/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우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떼가
누우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우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우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우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우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 중 몇 마리는 저 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시를 겁나게 잘 아는 친구 얘기/조영관
어쩌다 곰장어 포실하게 익어 가는 포장마차에서
몇 자 끼적거리다가 들키는 바람에
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 왈
가슴을 때리면 때리는 것이지
때릴까 말까 그렇게 재는 것도 시냐고
저 푸른 풀밭 거시기 하면서 끝나면 되는 것을
뭐 좋은 말 있을까 없을까 겁나게 재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고
친구는 심심한 입으로 깐죽거리며 얘기했는데
유행가 가사처럼 자기 깐에 흥얼흥얼 불러제낄 수 있으면 된느 거지
도대체 분간이 안 가게 써 놓은 것도 시냐고
툭 터진 입으로 잘도 나불대다가는
거울에 달라붙은 묵은 때를
걸레로 박박 문대 닦아내드끼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들 머리에도
훤하게 쏙쏙 들어오게 고렇게만 쓰면 될 것이지
기깔나게 멋만 부려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라고 친구는 겁나게
싸갈탱이 없이 얘기를 했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니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해 놓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천장만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래 짜샤 나도 안다 알어 그 정도가 될라면
얼마나 지지고 볶고 엎어치고 뒤집어치고
대가리를 얼마나 질끈질끈 우려먹어야 되는지 나도 안단 말이다
허지만 요즘 같이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그런 고민을 해쌓다니
정말 신통방통허다면서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다가는
달랜답시고 어깨를 툭툭 치며 술까지 채워줬는데
그래 죽도 밥도 안 되는 시
고것도 사치라고 말하면 할말이 없다마는 하고
서두를 떼어놓고도
시가
유행가 가사처럼 술술 그렇게 흘러나오기가
쉽냐 임마 하고 말하려다가
술잔만 빙빙 돌리며 고개를 팍 수그리고 찌그러져 있었는데
한심하다는 것인지 안타깝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친구는 입맛을 춧춧 다시며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더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흔적을 남기는
우리 인생살이 같이
농담 같으면서도 농담 같지 않고
욕 같으면서도 욕이 되지는 않는
망치로 때리는 것 같지만서도 호미로 가슴을 긁는 시가 될라면
졸나게 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어려운 시가 될라면
얼매나 깊은 터널을 지나야 하는지 니가 어떻게 알겄냐 자식아, 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면서도
웬일로 한숨 같은 기침만 터져 나오는지
연기 자우룩하게 곰장어는 익다 못해 타고 있었는데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박정대
그런 건 없겠지만, 사랑이여
그대가 없어도 혼자 담배 피우는 밤은 오네
보르헤스의 책을 펼쳐놓고
<꿈의 호랑이들>을 읽는 밤은 오네
밤이 와서 뭘 어쩌겠다는 것도 아닌데
깊은 밤 속에서
촛불로 작은 동굴을 하나 파고
아무도 읽지 않을 시를 쓰는 밤은 오네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가끔 비가 내리기도 하겠지만
내 고독이 만드는 음악을
저 홀로 알뜰히 듣는 밤은 또 오네
한때 내가 사랑했던 그대,
통속소설처럼 떠나간 그대는
또 다른 사람 품에서
사랑을 구하고 있겠지만
이제는 아무리 그대를 생각해도
더 이상 아프지도 않아 나는 아프네,
때로는 그대와의 한 순간이
내게 영원으로 가는 길을 보여줬으니
미안해하지 말게, 사랑이여,
그런 건 없겠지만, 그래도 사랑이여
그대에 대한 짧은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나는 이미 불멸을 지녔네
사랑하는 별 하나/이성선
나도 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외로워 쳐다보면
눈 마주쳐 마음 비쳐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꽃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일이 괴로워 쓸쓸히 밖으로 나서는 날에
가슴에 화안히 안기어
눈물짓듯 웃어 주는
하얀들꽃이 될 수 있을까
가슴에 사랑하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외로울 때 부르면 다가오는
별 하나를 갖고 싶다
마음 어두운 밤 깊을수록
우러러 쳐다보면
반짝이는 그 맑은 눈빛으로 나를 씻어
길을 비추어 주는
그런 사람 하나 갖고 싶다
아침에 길을 나서다 걸음을 멈췄습니다 민들레가 자진自盡해 있었습니다
지난 봄부터 눈인사를 주고받던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꽃대 끝이 허전했습니다
꽃을 날려보낸 꽃대가, 깃발 없는 깃대처럼 허전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아직도 초록으로 남아 있는 잎사귀와 땅을 움켜쥐고 있는 뿌리 때문일 것입니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다 멈춘 민들레 잎사귀들은 기진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낸 자세입니다
첫아이를 순산한 젊은 어미의 자세가 저렇지 않을는지요
지난 봄부터 민들레가 집중한 것은 오직 가벼움이었습니다 꽃대 위에 노란 꽃을
힘껏 밀어 올린 다음, 여름 내내 꽃 안에 있는 물기를 없애왔습니다 물기가 남아
있는 한 홀씨는 바람에게 들켜 바람의 갈피에 올라탈 수가 없습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홀씨는 물기의 끝, 무게의 끝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잘 말라 있는 이별, 그리하여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결별,
민들레와 민들레꽃은 저렇게 헤어집니다
이별은 어느 날 문득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나는 순간, 이별도 함께
시작됩니다 민들레는 꽃대를 밀어 올리며 지극한 헤어짐을 준비합니다
홀씨들을 다 날려보낸 민들레가 압정처럼 땅에 박혀 있습니다
우기(雨期) / 문세정
고층 아파트 베란다 난간에서 꽃무늬차렵이불이 비를 맞고 있다 우산도 없이 프리다 칼로 공원에 앉아 있던 블라우스처럼 고스란히 젖는다 흥건해진다 속으로 구름을 키우며 사는 것들은 원래 빗물에 약한 법
이불 속 드라이플라워되었던 꽃잎들 선명하게 몸 불린다 난간에 매달린 줄기가 불안하지만 보송보송하게 굴어야 할 내일을 위해 지금은 흡수 맘껏 흡수
기공을 활짝 열고 자리 편 이상 이미 난 젖은 솜, 양팔저울에 슬픔의 무게를 달아볼까, 그동안 사랑인 줄 알고 키워 온 구름이 너무 무거워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다 더욱 거세지는 빗줄기
-시집 <예수를 리메이크하다>(문학세계사) 中
---------------------------------------------
속으로 구름을 키우며 사는 것들은 원래 빗물에 약한 법
그 동안 사랑인 줄 알고 키워 온 구름이 너무 무거워
주르륵 흘러내리는 빗줄기
표현이 너무 좋다.
비를 맞고 있는 이불 하나로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 부럽다.
구름인 줄 모르고 구름을 키우고 너무 무거워 빗물을 흘려야만 하는 것이 본래 인생이라니 서글프기도 하지만.
다시 시작해보자 / 김동률
헤어지자.
요란할 것도 없었지.
짧게 good-bye.
7년의 세월을 털고
언제 만나도 보란듯 씩씩하게 혼자 살면 되잖아.
잘됐잖아.
둘이라 할 수 없던 일
맘껏 뭐든 나를 위해 살아보자.
주기만 했던 사랑에 지쳐서 괜히 많은 걸 목말라 했으니.
그럼에도 가끔은
널 생각하게 됐어.
좋은 영화를 보고
멋진 노래를 들을 때
보여주고 싶어서 들려주고 싶어
전화기를 들 뻔도 했어.
함께일 땐
당연해서 몰랐던 일 하나둘씩 나를 번거롭게 했지
걸핏하면 툭 무서워 화를 내고
자꾸 웃을 일이 줄어만 갔지...
내 친구들의 위로가
듣기 불편해서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휑한 방안보다 더 내 마음이 더 시려.
좀 울기도 했어.
그럴 때면 여전히
널 생각하게 됐어.
매일 다툰다 해도 매번 속을 썩여도
그런 게 참 그리워.
좋았던 일보다 나를 울고 웃게 했던 날들.
아무래도 나는
너여야 하는 가봐.
같은 반복이어도
나아질 게 없대도
그냥 다시 해보자. 한번 더 그래보자.
지루했던 연습 이제는 그만하자.
우리 다시 시작해보자.
---------------------------------------------------
김동률의 새 노래가 나왔다. 멜로디 자체는 예전의 스타일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지만 반갑다. 내일 앨범이 나온다는데 바로 사러가야겠다. 유일하게 모든 앨범을 가지고 있는 가수니까. 그리고... 왠지 쓸쓸하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