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라 10대 여왕은 재정이 부족하자 이공(夷公)이란 세금 전문가를 불러들인다. 그는 오만가지 세금을 신설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짜기 시작한다. 그러자 백성들은 봉기를 일으키고 궁궐까지 쳐들어왔다. 여왕은 도망쳤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그 사건 이후부터 역사 연대가 기록되어 있다. 백성들이 궁궐의 기록을 모두 불살라버렸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인한 민초들의 분노는 이렇게 무섭다. 혹자는 부마항쟁의 원인을 부가가치세의 신설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지 않은가?)

왕이 도망가고 제후들은 위무공 공백(共伯)을 중심으로 대신들이 모여 함께 나라를 다스려 간다. 공백의 이름은 화(和)로, 이때의 정치를 공화(共和) 정치라 했다. 공화 원년인 것이다. 여기서 오늘날 쓰는 공화국이니 공화제도니 하는 말들이 유래되었다.
by 누런돼지 2008. 6. 27. 16:35